생각하게 하는 글

안 중근 의사의 옥중생활

에델리아 777 2015. 8. 13. 22:11

안 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 후 일본 정부에 의해 체포되어 뤼순 감옥에 수감된다.

10월 26일 거사가 있었고, 사형 집행은 이듬해 3월 26일 이었으니, 처음 얼마 동안 러시아에서 조사를 받고 뤼순으로 이동하는 시각을 빼고 약 5개월 가량을 한겨울의 중국 땅 뤼순 감옥에서 생활하신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기도하고 흐트러짐 없는 몸가짐과 온화한 얼굴빛으로 조용하게 붓글씨를 썼다고 한다. 잘 알려진 <동양평화론>을 집필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이다. <동양평화론> 집필 마무리를 위해 사형 집행 시기를 연장해 줄 것을 간수들에게 청했으나, 상부에서 허락했을 리가 만무하다. 아쉽게도 <동양평화론>은 서론만 집필이 되고 미완으로 남았다. 30세의 청년이 가졌던 동아시아가 향후 나아가고 대처해야 할 방향에 대한 생각들이 서론으로만 추측해야 하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감옥에서 붓글씨를 쓰고 있는 모습이 하늘의 천신이 내려와서 글을 쓰는 것 같았다고 회고하는 어느 한 간수의 일화도 유명하다. 입소문이 났는지 근방 지식인들이 붓글씨를 부탁했고, 청하는 자의 상황에 맞는 글을 써 주었다고 한다. 

 

 

 

 

 

 

이토오 히로부미 개인에게는 원한이 없다는 말씀도 남겼다고 한다.  가톨릭 신자로서 삶을 정리하고 사형 집행일이 다가올수록 더욱 담담하게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했다고 한다. < 위국헌신 군인본분> 이라는 마지막 유묵은 안의사를 러시아에서 뤼순으로 호송한 일본인 간수(지바 도시치)에게 준 것이다. 이는 안 중근 의사의 옥중 생활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고, 유묵을 부탁했으나 받지 못하다가, 안의사가 사형집행일 아침에  써 놓은 것을 받은 것이라 한다. 또한 일본인을 대신해서 사과한다는 말을 했고,  안 의사는 그 마음을 받았을 것이다.

 

안 중근 의사도 <대한의군 참모 총장>이라는 군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했으니, 일본인 헌병 간수(지바 도시치)도 군인으로서 그의 본분을 충실히 하라는 뜻이었을까? 지바 도시치는 너무도 큰 감명을 받아 그 후, 일본으로 돌아와서 군인을 그만두고 시골에 정착해서 살면서 안 의사를 집안의 가신으로 모시고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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