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집필하신 자서전에서 가톨릭 신자로서의 모습에 주목한 적이 있다. 죽음을 앞두고 계신 탓이었을까? 자서전 내 많은 부분이 신앙과 관련된 이야기여서 그 부분이 흥미로웠다. 19세에 가족과 함께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았고, 부모님과 함께 친지 70여명이 오지로 들어가 신앙 공동체를 꾸리며 생활하셨다. 세례를 준 신부님을 따라 미사 성제의 복사를 하고, 열성적으로 전도를 해서 많은 이들을 입교시켰다고 한다.
독립 운동을 떠나기 전, 성사를 보려고 뮈텔 대주교님을 찾아갔는데, 무장 독립 운동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은 대주교님이 거절을 한다. 가톨릭 박해 시절부터 가톨릭 교우 들의 피해가 많았고 조선 가톨릭의 기반을 닦기 위함이었는지 무장 투쟁에 대해서는 인식이 좋지 못했던 것 같다. 안 의사는 가톨릭 종교는 참되나, 서양인 신부는 조선인이 아니므로 조선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고 이해하신 듯하다.
독립 전쟁 때, 국제법상의 규약대로 일본인 포로를 학대하지 않고 놓아 준 후, 그들의 변심으로 독립군이 대패하게 되어 겨우 몇 명만 살아 남았을 때, 그 동료들에게 대세를 주고 가톨릭에 입교를 시킨 후 신의 보호를 청하고 헤어진다.
포로를 놓아 준 것을 판단 착오로 오인한 조선인들의 냉랭한 반응을 겪은 즈음, 꿈에서 성모 마리아께서 나타나셔서 위로해 주셨다는 이야기가 자서전에 나온다. 그 후 12명의 동지들과 단지 동맹을 맺게 된다.
<대한의군 참모총장>으로 새로운 작전을 위해 준비한다. 병사들은 없는 외로운 참모 총장인 셈이다.
안 중근 의사에게 세례를 준 신부님과 또, 인연이 있었던 신부님들의 고향이 프랑스 알자스 지방 출신이라는 부분에서 <동양평화론>이라는 사상과의 연관성을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옥중에서 자서전과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면서 종부 성사를 청한다. 세례를 준 신부님께서는 많이 고민을 하신 듯하다. 성사 집행 문제로 뤼순으로 가게 될 경우 ,조선 가톨릭의 입장과 반하므로 사제로서는 순명서약에 반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뤼순으로 가는 것을 결정한다.
뤼순에서 안 의사를 만났을 때, 갈등 끝에 뤼순으로 오겠다고 결정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첫째는 세례를 준 신부님으로서 안 의사를 아버지처럼 사랑하는 마음으로 둘째는 살인은 가톨릭의 교리에서는 죄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셋째는 가톨릭인답게 죽음을 맞이하고 받아들이라는 안 의사의 모친과 안의사를 아는 교우들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신부님은 이후, 가톨릭에서 불순명이라는 문제로 고초를 겪지만, 이후 해명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토 히로부미 저격은 가톨릭 교리에서 상당히 예민한 문제인 듯하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도 이토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라, <대한의군 참모총장> 군인으로서의 작전을 수행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어쨌든, 사형집행일을 남겨 두고, 안 의사는 삶을 정리하면서 마지막 성사인 고백성사를 준비하고 성사를 본다. 일본 간수들이 있는 앞에서 고백성사를 수행하라는 압력이 있었지만, 그 마지막 고해 성사는 간수들의 눈에 사랑이 담긴 자애로운 아버지가 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쳤다고 전해진다.
곧이어 뤼순 감옥에서 미사가 진행이 되고, 안 의사는 복사를 서게 된다. 그 후, 신부님과 안 의사는 3월 25일 가톨릭 전례력으로 성금요일 사형 집행을 청하지만, 일제의 거절로 그 다음 날로 미뤄지게 된다. 추측건대, 예수님의 희생이 절정에 달하는 성금요일 사형 집행은 일본의 입장으로는 상당한 국제적인 부담이 되었을 것 같다. 3월 25일은 가톨릭에서는 성모 영보 대축일. 즉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또다른 대축일이기도 하다.
이후, 3월 26일까지 많은 유묵을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남기셨고, 전부 일본인들에게 전해졌다. 그 유묵들을 받은 이들은 지금까지도 집안의 가보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죽음 앞에 평화로운 그 모습으로 유묵을 쓰시던 모습이 천신이 내려온 듯하게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 재판에 관여했던 한 일본인은 안 의사와의 마지막 면담에서 천국에서 만나자라고 인사를 했는데, 이 지상에서는 국가라는 경계가 있지만 천국은 종교라는 경계가 있다고 답하셨다 한다. 그 후, 그는 가톨릭으로 개종을 했다고 전한다.
안 중근 의사는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인한 무인의 모습, 옥중 재판 중에서는 논리적인 문인의 면모, 삶에서는 훌륭한 가톨릭 평신도로서의 모습을 다 갖춘 분이다. 내 삶의 자리에서 나는 어느 정도로 성실하고 충실하게 살아 가고 있는지 지금의 나를 점검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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